우미래 리포트

[이사장 칼럼] 에너지전환의 정치학과 제국의 리더십

작성자
Ourfuture
작성일
2017-07-06 10:05
조회
60
[매일경제_세상읽기] 에너지전환의 정치학과 제국의 리더십
2016.07.05


1911년 해군제독 윈스턴 처칠은 영국 전함의 연료를 석탄에서 석유로 전환하는 '역사적 결정'을 단행했다. 팽창하는 독일의 해군력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영국 함정이 '더 많은 화력과 더 빠른 속력'을 갖춰야 하고 그래서 석유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논리였다.

대다수 영국인은 그런 처칠에 대해 엄청난 비난을 퍼부었다. 영국이 산업혁명의 종주국이 된 것은 와튼의 증기기관과 더불어 웨일스 지역에 넘쳐나는 석탄 덕분인데 처칠은 이를 '배반'하고 9600㎞나 떨어진 페르시아 제국(현재의 이란)에서 석유를 도입해 쓰겠다고 하니 그런 반응이 나온 건 당연한 셈이었다.

하지만 처칠은 이런 반발에 굴하지 않고 지금까지 회자되는 에너지 안보의 기본 명제로 응수했다. 그는 1913년 의회에 출석해 대영제국의 안전과 확실성을 보장할 에너지 정책은 "다양성, 오직 다양성뿐(variety and only variety)"이라고 응수했다. 처칠의 관점은 "한 가지 품질에, 한 가지 공정에, 한 나라에, 하나의 루트에, 하나의 분야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의 판단은 옳았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영국의 전함은 결국 독일의 전함을 눌렀다. 기계화 전쟁으로 치달은 그 승패는 결국 석유가 갈랐기 때문이다. 1916년 전장에 등장한 탱크전투의 승자는 사막의 여우라는 독일 로멜이 되는 듯했지만 그는 결국 아내에게 이런 편지를 써야 했다. "여보, 석유가 부족하오."

기실 히틀러가 러시아를 침공한 것도, 일본이 미국을 공격한 것도, 그 무모하고 위험한 배경에는 새롭고도 강력한 에너지원으로 떠오른 석유를 뒤늦게라도 장악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음을 사료는 속속 밝히고 있다.

당대의 걸출한 석학 다니엘 예르긴(Daniel Yergin)은 그의 저서 '2030 에너지 전쟁(The Quest)'에서 "처칠의 명언은 여전히 유효하다"며 "에너지 선택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초당파적 태도가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이른바 '에너지 믹스'의 철칙은 다양성에 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오래된 처칠의 얘기를 이 시점에 소환하는 이유는 문재인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이 이 같은 통찰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어서다.

주지하듯, 문재인 대통령은 현재 전력생산의 70%에 달하는 석탄과 원자력 비중을 2030년에는 절반 이하인 43%로 감축하는 대신 23% 남짓한 재생에너지와 천연가스의 비중을 57%로 늘린다는 대선 공약 아래 고리원전 5·6호기 건설을 일단 중지시켰고 그 가부를 국민배심원단에 묻겠다고 한다.

문제는 미리 한쪽으로 답을 정하고 지령하는 듯한 태도와 방식에 있다. 이번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인선에 있어 원전을 담당한 관료나 전문가는 무조건 배제했다는 얘기가 일찌감치 나돈 배경인데 부처 당국자는 "다양성은 사치고 청와대가 정한 방침에 무조건 따라야 하는 분위기"라고 전한다. '대통령을 위한 에너지'를 저술한 리처드 뮬러 버클리대 교수가 "에너지 정책은 이념이나 심리가 아니라 과학에 기반해야 한다"고 역설하는 것과는 다른 풍경이다. 그는 "온실가스와 미세먼지로부터 자유로운 원자력은 파리기후협약의 저탄소 에너지 기조에 맞고, 미국과 러시아 , 중국과 일본이 경합하는 미래 에너지인데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한국이 왜 스스로 미리 문을 닫으려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연결성'도 선결과제다. 독일이 탈원전 등 과감한 에너지 전환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프랑스 등 이웃나라와 전력망이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자신 있게 에너지 전환을 추진하기 위한 선결과제 중 하나로 전력망 연결이 손꼽히는 이유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통령 특사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났을 때 '언제까지 그림만 그리겠느냐'며 적극 추진 의사를 나눴고, 조환익 한전 사장이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을 비롯해 일본, 중국, 러시아 당국자와 큰 그림을 공유한 건 그런 면에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관련국들의 외교력과 정치력을 필요로 하는 일인데 이런 게 선결되어야 힘 있게 에너지전환을 말할 수 있다. '유라시아그룹' 에너지 자원 부문 CEO 로버트 존스턴이 이런 얘기를 했다. "앞으로 글로벌 에너지 정책은 기후변화와 에너지 안보, 그리고 녹색산업 3가지를 어떻게 조화할지가 관건입니다, 정말 큰 판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것을 이끄는 게 결국은 큰 나라의 정치력이지요." 예르긴이 에너지 전환의 성공요건으로 리더십을 손꼽는 것과 다르지 않다. 에너지를 쥐는 자가 세계를 쥔다는 제국의 금언을 쉽게 여기는 건 변방의 속성, 혹은 한계일까?

[김상협 카이스트 초빙교수·우리들의 미래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