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미래 리포트

[이사장 칼럼] 블록체인과 국가주의, 실수를 반복할 것인가?

이사장칼럼
작성자
ourfuture
작성일
2018-09-27 11:31
조회
104
[매일경재_세상읽기]블록체인과 국가주의, 실수를 반복할 것인가?
2018.09.27

실리콘밸리의 전설적 벤처투자가 팀 드레이퍼가 '가상화폐'에 관심을 갖게 된 건 한국의 '리니지' 덕분이라고 한다. 2004년의 일이다. 가까운 친구에게서 "아들이 리니지에서 계속 힘을 발휘하려면 아바타를 고용해야 할 지경이라고 조르기에 40달러를 주고 가상의 칼을 사주었다"는 얘기를 듣고부터다. 인터넷 기업 초기 투자자로 이미 막대한 부를 축적했던 그는 "가상 세계와 실제 세계가 공존하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영감이 들었다"며 그 순간을 회고한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2014년. 드레이퍼는 미국 정부가 경매 매물로 내놓은 비트코인 4만개를 2400만달러를 걸고 획득했다. 당시로는 무모한 투자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지만 지금 그 가치는 최근 하락세에도 2억7000만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그는 2022년이면 비트코인 가치가 한 개당 25만달러에 달하게 될 것이라며 비트코인과 블록체인 관련 기업에 대한 투자를 계속 확대할 것이란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드레이퍼의 베팅이 맞을 것인지, 틀릴 것인지는 필자의 역량과 관심 밖이라 뭐라 말하지 못하지만 2009년 비트코인이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1만개 코인으로 고작 피자 두 판을 샀던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드레이퍼가 정말로 주목하는 것도 비트코인 기반 기술인 블록체인의 잠재력이다. 그는 "인터넷이 세상을 바꿔놓았듯 블록체인도 세상을 바꿀 전환적 기술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인터넷이 데이터와 정보의 '빅뱅'을 가져왔다면 블록체인은 이에 대한 '탈(脫)중앙, 대(大)분산'의 자치(自治·셀프 거버넌스) 혁명을 가져오게 되리란 것이다.

드레이퍼는 블록체인이 빅데이터, 딥러닝, 인공지능과 결합해 은행, 보험, 의료, 부동산 등 수십조 달러 규모의 중앙집중형 산업과 조직의 기반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는데 그중 백미로 정부를 손꼽고 있다. 정부야말로 가장 비싸고 비효율적인 중앙집중형 권력의 표상이기에 변화의 직격탄을 맞게 되리란 분석이다.

이런 면에서 스스로 국가권력을 시민에게 나눠주며 블록체인 혁명을 선도하고 있는 에스토니아는 세계의 눈길을 끌고 있다. 1997년 전자 거버넌스를 선언한 에스토니아는 전자세금(2000년)과 전자투표(2005년) 실시에 이어 2008년 행정과 입법에 블록체인을 도입한 이래 전자영주권과 데이터대사관, 시민코인(에스트코인)에 이르기까지 내치와 외치의 경계를 뛰어넘는 디지털 세계화를 주도하고 있다. 에스토니아는 이를 통해 GDP 2% 이상의 비용을 절감하며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 창출의 허브로 변신하고 있는데 케르스티 칼률라이드 대통령은 "기술 발전에 앞서 법과 제도부터 미래지향적으로 바꾼 것이 주효했다"고 강조한다.

이에 반해 디지털 강국이라는 한국의 현주소는 좋게 말해 '불명(不明)'이다.

"가상화폐와 블록체인은 분명히 분리해봐야 할 문제"(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가상화폐가 아니라 가상증표 정도로 봐야 한다"(박상기 법무부 장관)는 당국자의 인식 수준 속에서 한국은 중국을 빼면 블록체인의 쌍둥이인 가상화폐 발행을 "도박처럼 금지하는 유일한 나라가 되고 말았다"(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 그나마 여지를 준 게 "쉽게 생각할 수 없는 문제"(김동연 경제부총리)라는 발언 정도인데 아직도 이에 대한 정책 방향조차 오리무중으로 남아 있는 건 믿기 어려울 정도다. 이로 인해 핵심 지지층이었던 20·30대가 대거 이탈하며 '국가주의' 논쟁까지 불러일으킨 건 아이러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특별한 자치권한을 법률적으로 부여받은 제주도의 원희룡 지사가 "제주를 블록체인과 가상화폐의 특구로 지정해달라"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호소하고 있는 것은 그래서 눈길이 간다. 제주를 탄소 제로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모든 경제주체의 활동을 투명하게 공유하는 블록체인은 긴요하다. 유엔의 전폭적 지지도 받고 있다.

원 지사는 여기에 방점 하나를 추가한다. "페이스북 원조 격인 싸이월드는 한국이 종주국인데도 유명무실해지고 말았습니다. 블록체인과 같은 플랫폼에서도 같은 실수를 되풀이할 여유가 이젠 없어요. 여기서부터 미래를 창조해나가야 합니다."

다음달 10일 개최되는 세계지식포럼에서는 드레이퍼와 칼률라이드, 그리고 원 지사의 육성을 직접 듣는 기회가 마련된다. 판단은 여러분 몫이다.

[김상협 카이스트 초빙교수·우리들의 미래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