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미래 리포트

[이사장 칼럼] 大가속의 시대와 386그룹

이사장칼럼
작성자
ourfuture
작성일
2019-11-25 11:24
조회
32

大가속의 시대와 386그룹


2019.11.21

토끼띠인 필자는 1982년에 대학에 들어갔다. 그러니까 `386`이라 불리는 세대에 속한다. 싫든 좋든 말이다. 그로부터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들이 그동안 벌어져 왔다.

그때는 종속이론이 유행했다. 주변부에 불과한 한국은 미국이라는 제국의 이익에 영속적으로 수탈당하는 객체이며 매판자본과 정경유착 소수만 재미를 보고 노동자와 일반 국민의 삶은 갈수록 더 피폐해질 것이라는 시각이었다. 그러나 글로벌 개방경제에 올라탄 한국은 반도체를 위시해 국제 분업과 가치사슬의 중요한 축을 차지하며 세계 10위권의 경제로 도약했다. 미국은 이제 골프 핸디를 인정하지 않는 맞상대처럼 한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이 `불공정`하다고 불평하며 방위비도 더 내라고 압박하고 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전환시대의 논리`를 필독서로 삼으며 잘 못 태어난 나라 한국의 반체제운동에 앞장섰던 이들로선 받아들이기 힘든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컴퓨터조차 구경할 수 없었던 당시. 군부정권이 88올림픽게임을 유치하자 독재정권을 연장하기 위한 술수라며 반발했지만 한국은 이를 계기로 전 세계 미디어에 노출되며 잘못을 숨기기 어려운 나라가 되었다. 서양 팝송을 들으면 의식 없다는 핀잔을 듣곤 했던 386세대의 후예가 이제 K팝스타로 뉴욕과 런던의 한복판을 누비게 되리라 누가 짐작했을까. 구글이 야심작 알파고의 맞상대로 바둑챔피언 이세돌을 지목해 차세대 인공지능 시대의 개막을 알리게 될 줄은 누가 알았을까. 특이점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는 인공지능이 기계와 인간의 경쟁(혹은 공존)을 가져오게 되리라는 걸 무덤 속 마르크스는 예견했을까?

이 시대 인류 최대의 도전으로 손꼽히는 기후변화는 또 어떤가? 과학자들은 `大가속(the Great Acceleration)`이라는 용어를 써가며 지구의 기후는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열탕(Hot-house)` 상태로 매우 빠르게 바뀌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른바 티핑포인트가 임박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과학자들의 국제기구 IPCC에서는 문제의 근원인 석탄과 같은 화석연료를 시급히 탈피하고 저탄소에너지인 재생에너지는 물론 원자력의 확장까지 주문하고 있다. 하지만 386이 주도한 정권에서는 탈석탄이 아니라 `탈원전`을 에너지 정책의 기본으로 삼고 있다. 기후변화에 관한 커리큘럼 자체가 거의 없었던 1980년대 대학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이들이 원전을 과거의 이념과 타성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에너지 혁명과 쌍궤를 이루는 모빌리티 혁명도 마찬가지다. 검찰이 초보적 수준의 승합차 호출 서비스 `타다`를 불법으로 규정해 기소한 것을 보면 무인자율주행차로 급변해가는 시대의 흐름에 과연 어떻게 대응해 나갈 것인지 막막하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지구화, 테크놀로지, 기후변화 세 가지 모두가 대가속의 열차를 타고 있다며 `역동적 안정성(dynamic stability)`으로 여기에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변화를 수용하는 역동성, 변화에 적응하는 안정성 모두가 중요하다는 지적인데 집권한 386은 자신의 지지층에 거의 무조건적 우선순위를 부여한다.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아무런 성과를 내놓지 못해도 이는 최저임금제와 주 52시간 근로제보다 중요한 사안은 아니다. 지속발전시대에 세대 격차가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귀족노조의 철밥통이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가로막아도 별 대책 없다.

공성이불거(功成而弗居), "공을 세웠지만 그 공에 살지 않는다"는 노자(老子)의 이 경구는 과거의 성공에 사로잡혀 세상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꼰대`가 되지 말라는 소리와 다를 바 없다.

피를 흘려가며 젊음을 희생해 `87년 체제`를 이끌어 낸 386그룹. 그 공에 사로잡혀 오래된 책을 너무 오랫동안 고집해온 탓일까. 이제는 586그룹이 된 그들은 신체제로의 비전을 보여주기는커녕 퇴행과 특권의 수구집단으로 퇴장압력을 받고 있다. 만물은 유전하는데 386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을 듯하다. 대가속의 새로운 세계를 이해하기에는 필자를 포함해 우리는 이미 늙었다.

[김상협 카이스트 지속발전센터장·우리들의 미래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