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미래 리포트

[이사장칼럼] 우리들의 친구, 지구라는 행성

이사장칼럼
작성자
ourfuture
작성일
2020-07-30 10:06
조회
12
[이사장칼럼] [매일경제 세상읽기] 우리들의 친구, 지구라는 행성

2020.07.30

저는 공장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면 그것이 발전이라 믿고 자라온 세대에 속합니다. 태어나자마자 서울로 올라왔기에 도랑에서 가재 잡고 수박 서리로 한여름을 보낸다는 건 책에서나 접하는 얘기였지요. 주변 산에는 나무가 거의 없는 붉은색이라 원래 산이 그런 건 줄 알고 지냈습니다. `수출 100억달러 돌파` 뉴스를 접하곤 마치 집안의 경사처럼 좋아했던 것도 기억이 납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산업화 키즈`였던 겁니다. 그러다 대학에 들어가니 최루탄과 화염병 시위가 일상이 되더군요. 한강의 기적은 개발독재와 정경유착의 산물일 따름이며 타도하자는 구호를 거의 매일 들었습니다. 대학 4학년 때 운 좋게 들어간 사회과학연구소는 그런 면에서 제게는 신세계였습니다. 당시 군부정권의 실세였던 체신부 차관이 `정보화 사회` 연구 프로젝트를 그 연구소에 맡겼고, 저는 존 나이스빗의 `메가 트렌드`나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을 이념서적 대신 읽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2000년대 초까지 모든 가정이 컴퓨터를 한 대씩 가지게 될 것`이라는 예견에 반신반의하곤 했습니다. 사회로 나와 기자 생활을 하면서 랩톱 퍼스널 컴퓨터가 순식간에 볼펜을 몰아내는 걸 체험하면서야 `정보화`의 실체적 위력을 깨달았지요.

`국제화`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88올림픽이 열리기 전까지는 일반인의 해외여행 자체가 사실상 금지됐었는데 어느새 문이 활짝 열리는 개방 시대가 찾아오더군요.

짧은 시간에 산업화·정보화·국제화라는 굵직한 변화를 겪다 보니 `이제 내 인생에 뭐 새로운 게 더 나오겠나` 하고 지내던 중 청와대에서 미래를 다루는 일을 맡고 보니 전혀 다른 게 눈에 들어오게 됐습니다. 인간이 만든 기후변화의 재앙에 대처하기 위한 `녹색화`가 그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공직을 떠나 학교에 몸담고 보니 인공지능이 바둑 천재 이세돌을 이기는 이변을 보게 되더군요. 이제는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희한한 존재가 세계를 휩쓸며 실존을 위협하고 있고요.

속으로 자문하게 됩니다. `60도 안된 인생에 뭘 더 겪어야 하는 거지?` 이미 충분히 숨 가쁘지만 이게 끝이 아닌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X세대와 Y세대를 걸쳐 20세기 마지막에 태어난 Z세대, 그리고 2010년 이후 알파세대에 이르기까지 변화의 속도는 더욱 빨라지는 모습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엄마, 아빠의 스마트폰을 장난감으로 삼아온 알파세대는 첨단 테크놀로지에는 가장 능통하지만 직업이나 환경에서는 그 어느 세대보다도 불확실하리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제가 요즘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일은 유엔 설립 75주년을 맞이해 주권국가뿐 아니라 지구 자체에 법률적 권리를 부여하자는 노력입니다. CHH(Common Home of Humanity)라는 범세계적 모임이 이를 주도하고 있는데 지구를 인류 공동의 집으로 삼아 이를 교란하면 제재를 가한다는 논거를 바탕에 깔고 있습니다. 개인의 집, 사유재산을 침범하면 처벌할 수 있듯이 말이지요. 알파세대로 갈수록 절박하고 당연한 일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대로 가다간 생존 자체를 기약할 수 없는 거주 불능 지구가 되고 말테니까요. 그런 면에서 데인 루디야르라는 철학자가 예견한 `의식의 행성화(Planetarization of Consciousness)`가 다음번 키워드일 수 있습니다. 국적과 종교, 이념과 성별을 떠나 지구라는 운명공동체에 서로 긴밀히 연결돼 있다는 존재론적 자각 말입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가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건 그런 행성의식이 이미 진행되고 있음을 방증한다고 믿고 싶습니다.

비록 현실은 그 반대로 향하는 정치인들이 쥐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변화는 언제나 예상을 뛰어넘어왔다는 걸 제 인생이 입증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김상협 카이스트 지속발전센터장·우리들의 미래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