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미래 리포트

[이사장 칼럼] 생수로 빨래하라고 부추기는 값싼 전기

이사장칼럼
작성자
ourfuture
작성일
2018-07-05 09:09
조회
144
[매일경제_세상읽기] "생수로 빨래하라고 부추기는 값싼 전기"
2018.07.04

한국전력 본사가 있는 전남 나주의 요즘 특산물은 한라봉이다. 기후변화로 열대과일이 제주를 거쳐 한반도 내륙으로 '북상'하는 현주소다. 여기엔 다른 요인도 가세하고 있다. 비닐하우스에서 재배되는 나주 한라봉의 주 에너지원은 남국의 뜨거운 햇볕도 있지만 그보다는 사실 값싼 전기다. 여기에 공급되는 전기 가격은 석유와 가스, 석탄 같은 원재료에 비해 40% 미만이다. 쉽게 말해 100원의 원가를 들여 생산한 물품을 파는 가격은 40원 미만이라는 소리다. 이런 밑지는 장사를 가능하게 하는 패러독스가 '전기요금의 정치학'이다. 지난 10년간 전력 수요 증가율은 연평균 3.3%로 일반용은 3.1%, 주택용은 2.1%지만 농사용은 7.7%로 전체 평균의 2배 이상 급증했다. 취약한 농민을 우대한다는 취지였지만 500㎾ 이상 대용량 기업농(이들 상당수는 결코 서민이 아니다!)의 연평균 성장률은 20%에 육박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쌀을 도정하고 미곡하는 대규모 사업체들도 값싼 농사용 전기료 혜택을 누리고자 지역구 정치인 로비에 나서는 모습이다.

이런 상황은 농업에 그치지 않는다. A철강기업은 석탄이 아니라 전기로를 주력 생산수단으로 삼았는데 석탄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CO2)를 줄이기 위한 고상한 목적에서가 아니라 값싼 전기료를 활용하기 위해서다. 이 회사는 특히 전기료가 싼 심야시간대를 집중 공략해 10시간 넘게 생산라인을 가동하고 있다. 한전과 에너지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이 경우 2.7배 이상의 원가 절감 효과가 있다고 한다. 유연탄 1㎏을 직접 태울 때 전기 2.56kwh를 생산하지만 전기로 동일한 열량을 생산하자면 열효율 손실 등으로 유연탄 2.67㎏이 필요하며 여기에 요금 혜택 프리미엄까지 붙는다는 것이다. 산업자원부 차관을 거쳐 하이닉스반도체의 기사회생을 이끈 김종갑 신임 한전 사장이 자신을 '두부공장 사장'에 비유하며 '두부보다 콩이 더 비싼 격'이란 글을 페이스북에 올린 배경이다.

필자가 청와대에서 관련 업무를 맡았던 2008년 당시 이전 정부로부터 물려받은 전기 생산 원가 회수율은 78%. 5년 동안 정치권 눈치를 봐가며 일곱 차례에 걸쳐 (심지어 2012년 대선 직후 한 차례까지) 조금씩 전기료 합리화를 도모했지만 95%에 그쳤고 아직까지도 100%는 되지 못했다고 한다.

싸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좋다. 순간의 인기도 얻을 것이다. 그러나 생산원가를 밑도는 전기요금 구조는 소비의 왜곡과 낭비를 불러 결과적으로 국민 전체의 후생을 저해하고 미래 산업 기반을 망친다는 데 문제가 있다. 문승일 서울대 공대 교수는 "OECD 평균의 절반 수준인 현행 전기료는 생수로 빨래를 하라고 부추기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이런 여건에서는 소비자가 에너지를 절약할 인센티브도, 에너지 전환의 동력도 마련할 수 없다"고 역설한다. 에너지 효율화를 위한 빅데이터 플랫폼을 사업모델로 삼아 소프트뱅크로부터 거액의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 인코어드가 한국보다 일본과 미국에서 더 큰 기회를 찾는 모습이 이를 방증하는 빙산의 일각이다.

무리한 탈원전은 상황 악화를 부채질하고 있다. 발전단가가 낮은 원자력(㎾당 66.73원)을 대신해 CO2와 미세먼지의 주범인 석탄(90.97원) 발전은 2016년 39%에서 올 1분기 43.4%로 '역행'했고 정세 불안으로 가격이 더 오른 LNG 비중 역시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미국 경제 매거진 포브스가 2년 연속 세계 최고 유틸리티 기업으로 선정했던 한전이 2017년 4분기부터 지금까지 분기마다 1000억원 이상의 적자 행진을 보이는 까닭이다. 6년여간 한전의 활로를 이끌었지만 '자진사퇴' 형식을 빌려 지난 연말 퇴임한 조환익 전 한전 사장은 이렇게 술회한다. "전기자동차 충전 인프라스트럭처에서 재생에너지와 에너지저장장치, 사우디아라비아의 스마트시티에서 북한의 전력 SOC 구축에 이르기까지 한전은 단기적 수익의 관점을 넘어 중장기적 투자와 사업을 이끌 공기업이지만 이를 독려할 사회적 환경이 아쉽다."

전기는 4차 산업이 더욱 '애정'할 동력이다. 한국이 한국통신(지금의 KT)을 내세워 정보화 시대의 초고속인터넷망을 주도했듯, 한국전력이 기후에너지 시대를 선도해 미래 세대의 먹거리와 일자리를 이끌게 할 정치적 리더십은 정녕 없는 걸까?

[김상협 카이스트 초빙교수·우리들의 미래 이사장]